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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대로 믿는 사람들

왜 적은 보상은 더 큰 설득을 낳는가?


우리는 종종 이런 장면을 겪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건넵니다.

“진짜 재밌었어요.”

속으로는 ‘정말 재미없었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죠.
그런데 며칠 뒤, 그 대화를 떠올리다 보면
‘뭐, 그 정도면 재미있었다고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건 단순한 기억 왜곡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믿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꾸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이런 현상을 보고 심리학자들은 질문했습니다.
“왜 사람은 자기 말에 스스로 설득당하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실험적 해답을 보여준 고전 연구,
Festinger와 Carlsmith의 1959년 실험을 소개합니다.


1. 말하면서 믿게 되는 심리? 기존 설명의 한계

1950년대 중반,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태도는 쉽게 바뀔 수 있는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Janis & King (1954, 1956)의 연구입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 대해 즉석 연설을 시키고,
연설이 끝난 후 참가자의 태도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연설을 직접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읽기만 하거나 듣기만 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그 입장에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말을 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만들고, 반복적으로 말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도 그 입장에 설득당하게 된다는 것.

즉, ‘연습 효과(mental rehearsal)’로 인한 자기 설득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한 가지 중요한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보상과 태도 변화의 관계입니다.


2. 이상한 결과를 보여준 실험: 보상이 클수록 설득은 약해졌다?

Kelman (1953)은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말하게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의 크기를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실험 전 기대는 이랬습니다.

  • 보상이 클수록 → 더 열심히 말할 것
  • 더 열심히 말했으니 → 더 설득될 것
  • 따라서 → 태도 변화도 클 것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 적은 보상을 받은 사람이 오히려 입장을 바꾸는 경향이 더 컸고,
  • 많은 보상을 받은 사람태도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 결과는 단순히 '말을 많이 해서 바뀌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왜 적은 보상을 받았을 때 더 크게 믿게 된 걸까요?

Kelman도 이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고,
이 현상은 ‘연습 효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3. 새로운 관점의 전환: 인지부조화 이론의 등장

여기서 등장한 이론이 바로 Leon Festinger의 인지부조화 이론입니다.

Festinger는 이렇게 가정했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실제 행동이 서로 충돌하면,
심리적으로 불편하고 긴장된 상태(dissonance)가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은 이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행동을 바꾸기보다 믿음을 바꾸는 경향을 가진다.

쉽게 말해,
“내가 한 말”과 “내가 실제로 믿고 있는 것” 사이에 불일치가 생기면
그 둘을 맞추기 위해
믿음을 ‘말한 쪽’으로 바꿔버린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입니다:

  • 실험에 참가했는데 과제가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 그런데 어떤 이유로 “재미있었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게 되었다.
  • 말한 후, 머릿속에서 이런 갈등이 생깁니다:

    “나는 재미없다고 느꼈는데 왜 재미있다고 말했지?”

  • 만약 그 말을 한 이유가 ‘단돈 1달러’였다고 생각해봅시다.
    → 이건 변명을 대기도 애매한 상황이죠.

그럼 이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 스스로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그냥... 진짜로 좀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해.”

이게 바로 인지부조화입니다.
불편한 마음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믿음을 바꾸는 심리적 조절 과정입니다.


4. 그걸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정교한 실험

Festinger와 Carlsmith는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단 하나의 실험에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이 실험은 겉보기에는 단순했지만,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1) 인지부조화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

  • 과제가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 참가자가 그 과제를 ‘재미있었다’고 말하게 만들고
  • 보상의 크기를 조작함으로써
  • 내적 태도 변화가 얼마나 생기는지를 측정

(2) 기존 설명(mental rehearsal)을 차단하기 위한 검증 장치

  • 혹시 $1 받은 참가자들이 더 열심히 말해서 바뀐 것은 아닌지?
  • 이 반론을 실험 내부에서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

즉, 실험 하나 안에 이론 검증과 반박 제거를 모두 포함한 구조였습니다.


5. 지루한 실험을 ‘재미있었다’고 말하게 만들기

Festinger와 Carlsmith의 실험은 일종의 심리극처럼 짜였습니다.
참가자는 실험자들이 연출한 상황 안에 들어가
그들이 의도한 방식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단순히 설문만 작성하거나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극 중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실험 커버스토리: “지루한 실험에 대한 평가 실험입니다”

참가자는 실험 초반에 이렇게 안내받습니다.

“이 실험은 단순 작업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에요.
당신은 오늘 과제를 수행할 거고, 끝나고 다른 참가자에게 그 실험이 어땠는지 말해줄 사람을 구하고 있어요.”

여기서 과제는 정말로 지루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 1단계: 나무판에 박힌 작은 나사를 한 방향으로 계속 돌리기
  • 2단계: 쟁반 위에서 나무 실핀을 하나하나 옮기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
  • 총 소요 시간: 1시간
  • 참가자는 아무런 목적도, 피드백도 없이 그 작업을 반복함

이는 의도된 것이었습니다.
참가자가 “정말로”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기 위한 조작이었죠.


실험의 핵심 조작: 조건별 보상 차이

이 과제가 끝나고 나면, 참가자는 다른 실험 참가자에게
“이 실험은 아주 재미있고 의미 있었다”고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여기서 실험 참가자들은 세 가지 조건 중 하나에 무작위로 배정됩니다:

조건 설명
통제 조건(Control) 아무런 거짓말도 시키지 않음. 과제만 하고 끝.
$1 조건 “실험이 재미있었다”고 말해주면 $1 지급
$20 조건 같은 거짓말을 하고 $20 지급

그런데 참가자들은 이 요청을 실험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실험자들은 참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원래 도우미가 갑자기 못 나오게 돼서요... 다른 참가자에게 실험이 어땠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당신이 실험이 재미있었다고 말해주면 그 사람이 더 자연스럽게 실험에 임할 거예요.”

참가자 입장에서는 이 요청이
그냥 도와주는 일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커버스토리(cover story)'라고 부릅니다.


왜 $1과 $20인가?

이 두 보상은 매우 의도적으로 설계된 비교입니다.

  • $1은 거의 의미 없는 보상입니다.
    → 참가자는 “내가 왜 이 말을 했는가”에 대해 납득할 외부 이유가 없습니다.
    → 그래서 내면적 태도를 바꾸는 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20은 당시 기준으로 꽤 큰 돈입니다.
    → 참가자는 “돈 받으려고 그랬지”라고 스스로 말하며
    → 행동과 믿음 사이의 불일치를 보상으로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차이가 실험의 핵심입니다.
거짓말을 했을 때, 자신이 느낀 불편함(dissonance)을 어떻게 해소하는지를 관찰하려는 것이죠.


6. 참가자의 진심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을까?

이제 실험자들은 참가자의 내면적 변화,
즉 “정말로 믿음이 바뀌었는지”를 측정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과제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인터뷰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 인터뷰 역시 실험의 일환으로 위장된 상황입니다.

“방금 실험에 대해 평가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저희는 여러분의 주관적 경험도 함께 수집하고 있어요.”


사용된 질문 항목 (총 4문항)

  1. 실험이 전반적으로 얼마나 즐거웠습니까?
    (7점 척도: 매우 지루했다[1] ~ 매우 즐거웠다[7])

  2. 과제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7점 척도: 전혀 의미 없었다 ~ 매우 의미 있었다)

  3. 이 실험에 다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7점 척도: 전혀 없다 ~ 매우 참여하고 싶다)

  4. 이 실험이 과학적으로 가치 있다고 느꼈습니까?
    (7점 척도)

이 4문항의 평균 점수를 통해
참가자가 진심으로 실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는지,
태도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척도 설명

이런 설문은 일반적으로 리커트 척도(Likert Scale)라고 불리며,
심리학에서 매우 널리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숫자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의 감정이나 생각의 강도를 수치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7. 결과: 적은 보상이 더 큰 믿음을 만들었다

이제 결과를 살펴봅시다.
아래는 실험에서 수집된 4문항의 평균 점수를 요약한 표입니다.

조건 평균 평가 점수 (1~7)
Control (지루하다고 말함) 4.8
$20 조건 4.9
$1 조건 6.5

보시다시피,
가장 긍정적으로 실험을 평가한 집단은 $1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20 조건과 Control 조건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 결과는 인지부조화 이론이 정확하게 예측한 바와 일치합니다.

  • $1 조건:
    → 외부적 정당화가 부족함 → 내부 태도를 바꿔서 불일치를 해소함

  • $20 조건:
    → 충분한 외부 정당화가 있음 → 태도 변화 없이도 불편함이 없음


결론적으로,
적은 보상은 ‘내가 왜 이 말을 했는가’를 스스로 설명할 방법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믿음 자체를 바꾸는 심리적 조절이 일어난다
는 것이 입증된 것입니다.


8.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 인지부조화 이론으로의 연결

$1 조건 참가자들이 실험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결과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인지부조화 이론의 핵심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입니다.

그 심리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 참가자는 지루한 실험을 했다.
  •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이 실험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말하게 되었다.
  • 말한 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본다:

    “왜 그런 말을 했지?”

이 질문에 대해 외적인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예: $1 같은 너무 작은 보상),
사람은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설명을 찾아야 합니다.

그때 가장 쉽게 작동하는 방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

즉, 자기 믿음을 말한 쪽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불편함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최소 정당화 원리(minimal justificat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 외적인 보상이 클 경우
    → “내가 돈 때문에 그랬지”라는 설명으로 행동을 정당화 가능
    → 믿음을 바꿀 필요 없음

  • 외적인 보상이 작을 경우
    → 외부적 이유로는 설명이 안 됨
    믿음을 바꾸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게 됨

이 원리는 단지 실험 참가자의 태도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심리 작용이기도 합니다.
억지로 한 일이 어느 순간 내 진심이 되는 바로 그 순간 말입니다.


9. 예상되는 반박:

“그냥 $1 받은 사람이 더 열심히 말한 거 아니에요?”

이 결과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반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1 받은 참가자들이 더 설득력 있게 말한 거 아냐?”
“말을 더 많이 했거나, 더 진심처럼 보였을 수도 있잖아.”

이건 매우 타당한 의심입니다.
그래서 Festinger와 Carlsmith는 이 반론을 미리 예상하고,
실험 내부에 이 반론을 제거하기 위한 장치를 포함시켰습니다.


실험 속 또 하나의 설계: 참가자 발언 녹음 및 블라인드 평가

참가자들이
실험이 끝난 후 “실험 재밌어요”라고 말한 순간,
그 말은 모두 몰래 녹음되고 있었습니다.

이 녹음 파일은
$1 조건과 $20 조건 참가자의 발언을 비교하기 위한 데이터로 사용됩니다.

평가 방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녹음된 대화를 제3의 독립 평가자 두 명이 듣고,
  • 참가자가 어떤 방식으로 말했는지블라인드 상태로 평가합니다.
    → 즉, 평가자들은 그 사람이 얼마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평가 항목은 5가지였습니다:

  1. 참가자가 과제 전 어떤 이야기를 했는가
  2. 상대방(여자 참가자)이 “이거 지루하다던데요?”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가
  3. 전체 대화 내용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느껴졌는가
  4. 말한 내용이 얼마나 설득력 있고 확신에 차 있었는가
  5. 참가자가 실험 주제에 집중한 시간의 비율

이런 항목들은 모두
말의 양과 질, 자기 확신의 강도, 설득력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기준입니다.


10. 녹음 분석 결과: 말한 양도, 설득력도 같았다

평가자들은 $1 조건과 $20 조건 참가자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조건의 참가자가 더 열심히 말했는지, 더 설득력 있게 보였는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실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약):

항목 $1 조건 평균 $20 조건 평균 차이 유의성
긍정성 강도 거의 동일 거의 동일 X
설득력 동일 수준 동일 수준 X
발언 시간 평균 67초 평균 65초 X
확신의 강도 차이 없음 차이 없음 X

※ 평가자 간 일치도도 높았으며, 블라인드 평가의 신뢰도가 확보되었습니다.


이로써 $1 조건 참가자들이 더 열심히 말했기 때문에 태도 변화가 컸다는 설명은
실험 내부에서 명확히 반박되었습니다.

  • 말한 양도 같았고
  • 설득력도 같았고
  • 확신의 강도도 같았고
  • 전체 내용의 긍정성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참가자가 진짜로 믿음을 바꾼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타당한 설명이 됩니다.


Festinger와 Carlsmith는
이 실험을 통해 단지 “사람이 바뀐다”는 사실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왜, 어떤 심리적 기제가 작동해서 믿음이 바뀌는지
정교한 실험 설계를 통해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1. 기존 연구들은 사람들이 자신이 믿지 않는 말을 한 후 태도가 바뀌는 이유를 설득 과정이나 반복 연습으로 설명했지만, 왜 보상이 적을수록 더 큰 변화가 나타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2. Festinger는 보상의 크기가 작을수록 말과 믿음의 불일치에서 더 큰 인지부조화가 발생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사람은 믿음을 바꾼다고 예측했으며, 단일 실험 내에서 보상($1 vs. $20 vs. Control)을 조작하고 태도 평가를 통해 이를 검증했다.
  3. 그 결과, $1 보상 조건에서 가장 큰 태도 변화가 나타났고, 이는 외적 정당화가 부족할수록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바꾸어 행동과 일치시키려는 심리적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Festinger, L., & Carlsmith, J. M. (1959).
Cognitive consequences of forced complia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58(2), 203–210. https://doi.org/10.1037/h004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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