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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고생해서 얻은 것을 더 좋아할까? - 애런슨과 밀스의 혹독한 신고식 실험 파헤치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을 때, 그것이 더 소중하고 가치있게 느껴졌던 경험 없으신가요? [1]

예를 들어, 큰맘 먹고 비싼 돈을 주고 산 명품 가방이 더 애착이 간다거나, 힘들게 등반해서 정상에서 본 풍경이 유난히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2] 아니면 밤새 줄 서서 겨우 구한 한정판 운동화가 그냥 쉽게 산 운동화보다 훨씬 더 멋져 보일 수도 있죠. 이런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식의 생각, 혹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건 분명 가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듯한 마음. 왜 생기는 걸까요?

이런 현상은 특히 우리가 어떤 집단에 소속될 때 더 극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혹독한 신고식이나 어려운 가입 절차를 거쳐 들어간 동아리나 조직에 대해 유난히 더 큰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3] 단순히 그 동아리나 조직이 원래부터 좋아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그 '혹독한 과정' 자체가 우리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선행 연구(라고 하기엔 너무 흔한 관찰)가 던진 질문

사실 이건 심리학자들이 연구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현상이었습니다. [1] 하지만 과연 이 '흔한 관찰'이 과학적으로도 타당할까요? [4] 정말로 힘든 과정을 거치면 그 결과물을 더 좋아하게 되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5]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설명은 '원래부터 간절했던 사람들이 힘든 과정을 견디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6] 예를 들어, 정말로 특정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다소 불쾌하거나 힘든 가입 절차도 기꺼이 감수하려 할 겁니다. [7] 반면, 그저 '한번 해볼까?' 정도의 가벼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까다로운 절차 앞에서 쉽게 포기하겠죠. [8] 따라서 혹독한 신고식을 요구하는 동아리에는 애초에 열정 넘치는 사람들만 남게 되고, 그 결과 그 동아리 구성원들의 만족도가 평균적으로 높게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9, 10] 이걸 '자기 선택(self-selection)' 효과라고 부를 수 있겠죠.

이론적 배경: 혹시 '인지 부조화' 때문 아닐까?

하지만 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Elliot Aronson)저드슨 밀스(Judson Mills)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혹시 그 혹독한 신고식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아닐까? [11] 즉, 가입 동기가 비슷한 사람들이라도, 신고식의 '강도'에 따라 집단에 대한 애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13]

이 가설의 강력한 이론적 배경은 바로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인지 부조화 이론(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입니다. [14, 15] 인지 부조화 이론은 간단히 말해, 사람이 자신의 생각, 신념, 태도 등이 서로 일치하지 않거나 행동과 모순될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인지 부조화'라고 부르고, 사람은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나는 담배가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것을 안다'는 생각과 '나는 담배를 피운다'는 행동 사이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이 모순은 불편한 감정, 즉 인지 부조화를 유발합니다. 이 부조화를 줄이기 위해 사람은 몇 가지 방법을 택할 수 있습니다.

  • 행동 바꾸기: 담배를 끊는다. (가장 확실하지만 쉽지 않죠!)
  • 생각 바꾸기 (부정): "담배가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진 않아." 또는 "나한테는 별 영향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위험성을 평가절하한다.
  • 생각 바꾸기 (정당화):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해소돼. 스트레스가 더 나쁜 거야." 와 같이 흡연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생각을 추가한다.

자, 이제 이걸 혹독한 신고식 상황에 적용해 봅시다. [16] 어떤 사람이 매우 불쾌하고 힘든 신고식(예: 심한 창피 주기, 육체적 고통)을 거쳐 특정 그룹에 가입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17]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 그룹의 활동이 생각보다 별로 재미없거나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16] 이때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모순되는 생각이 충돌합니다.

  • 생각 1: "나는 이 그룹에 들어오기 위해 정말 힘들고 불쾌한 경험을 견뎌냈다." [17]
  • 생각 2: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이 그룹 활동은 꽤나 지루하고 별로다." [17]

이 두 생각 사이의 모순이 바로 인지 부조화입니다. 이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18]

  • "신고식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 라고 생각 바꾸기: 신고식이 그다지 힘들거나 불쾌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입니다. [18] 하지만 신고식이 정말로 혹독했다면, 이렇게 생각하기는 어렵겠죠. [19] 고통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 "이 그룹은 사실 굉장히 멋지고 가치 있는 곳이야!" 라고 생각 바꾸기: 그룹의 긍정적인 측면을 과장하고 부정적인 측면은 애써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방법입니다. [18] 즉, 자신의 고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룹의 매력을 실제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20]

애런슨과 밀스는 바로 이 두 번째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신고식이 혹독하면 혹독할수록 (첫 번째 방법으로 부조화를 해소하기 어려워지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그룹을 더 매력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핵심 가설이었습니다. [21, 22]

실험 설계: 인지 부조화를 실제로 증명해보자!

가설을 세웠으니 이제 검증할 차례입니다. 연구팀은 가입 동기의 차이가 아니라 순수하게 '신고식의 강도'가 그룹에 대한 호감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13, 23]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 참가자 모집: 성 심리학(psychology of sex)에 관한 그룹 토론에 참여할 여대생들을 모집했습니다. (성(性)이라는 주제는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쉬우면서도, 동시에 '당혹감'이라는 요소를 자연스럽게 실험에 도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33, 34, 41] 총 63명의 여대생이 참여했습니다. [32]

  • 무작위 배정: 참가자들을 세 그룹 중 하나에 무작위로 배정했습니다. 이 무작위 배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참가자들의 원래 가입 동기나 성격 등 다른 요인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고, 오직 '신고식 강도'의 효과만 비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24, 27]

  • 세 가지 조건 설정:

    • 혹독한 신고식 (Severe Initiation) 조건: 참가자는 실험자(남성) 앞에서 성적으로 매우 노골적인 단어 12개(예: fuck, cock 등)와 소설에 나오는 성행위에 대한 생생한 묘사 두 구절을 큰 소리로 읽어야 했습니다. [28, 64, 65] (1959년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는 매우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 가벼운 신고식 (Mild Initiation) 조건: 참가자는 성과 관련은 있지만 노골적이거나 외설적이지는 않은 단어 5개(예: prostitute, virgin 등)를 읽어야 했습니다. [29, 66]
    • 통제 조건 (Control Condition): 참가자는 아무것도 읽을 필요 없이 바로 그룹 멤버가 되었습니다. [30, 55]
  • '가짜' 신고식 이유 설명: 참가자들에게는 이 읽기 과제가 '당혹감 테스트(embarrassment test)'라고 설명되었습니다. 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미리 확인하기 위한 절차이며, 최근에 도입된 것이라 기존 멤버들은 거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56-59, 61] 이는 참가자들이 '우리만 힘든 과정을 겪었다'는 생각으로 인해 그룹과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62, 63]

  • '가짜' 그룹 토론 청취: 신고식을 통과한 (혹은 통제 집단의 경우 바로) 참가자들은 헤드폰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그룹 토론을 듣게 되었습니다. [31] 하지만 이것은 실제 토론이 아니라 미리 녹음된 테이프였습니다. [79] 연구팀은 이 녹음된 토론을 의도적으로 아주 지루하고 따분하게 만들었습니다. [80] 참가자들은 동물의 성적 행동에 대해 건조하고 두서없이 이야기하며 서로의 말을 반박하고 중얼거리는 등,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토론 중 하나를 듣게 된 것입니다. [81] 왜 이렇게 했을까요? 바로 '혹독한 신고식' 조건의 참가자들에게 인지 부조화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고작 이런 재미없는 토론을 들으려고?")

  • 토론 참여 방지: 참가자들에게는 이번 토론 주제인 '동물의 성 행동' 관련 책을 미리 읽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토론에 참여하지 말고 듣기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69-72] 이는 참가자들이 말을 하려다 녹음된 내용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68]

  • 평가: 토론 청취 후, 참가자들은 방금 들은 토론 내용과 토론 참여자들에 대해 여러 항목(예: 지루하다-흥미롭다, 똑똑하다-멍청하다 등 14개 항목, 나중에 3개 추가되어 총 17개 항목)에 걸쳐 평가하는 설문지를 작성했습니다. [82, 83] 이 평가 점수가 바로 그룹에 대한 '호감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됩니다.

  • 실험 후 설명: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에게 실험의 진짜 목적을 상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85, 86]

실험 결과: 혹독한 신고식은 마법을 부렸을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애런슨과 밀스의 가설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 혹독한 신고식 그룹의 압도적인 호감도: 혹독한 신고식(Severe Initiation)을 거친 참가자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토론 내용과 그 토론의 참여자들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91, 97] 통제 집단(Control)이나 가벼운 신고식(Mild Initiation) 집단과 비교했을 때,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97, 98, 128]

  • 가벼운 신고식은 별 효과 없음: 흥미롭게도, 가벼운 신고식(Mild Initiation)을 거친 그룹과 아무런 신고식 없이 참여한 통제 그룹(Control Condition) 사이에는 그룹에 대한 호감도에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91, 106, 129]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가입 동기가 높은 사람'들이 힘든 과정을 견뎌서가 아니라 (왜냐하면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배정되었으니까요!), [99] 혹독한 신고식이라는 '경험 그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그룹을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100, 101]

결과 해석: 인지 부조화가 만들어낸 '좋아함'의 마법

연구팀은 이 결과를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했습니다. [102]

  • 혹독한 신고식 그룹 참가자들은 "나는 정말 불쾌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이 그룹에 들어왔다"는 생각과 "이 그룹 토론은 끔찍하게 지루하다"는 생각이 충돌하면서 강한 인지 부조화를 경험했습니다. [103]

  • 이 불편함을 해소해야 하는데, 신고식이 너무나 명백히 힘들었기 때문에 "사실 별로 힘들지 않았어"라고 스스로를 속이기는 어려웠습니다. [105]

  • 따라서 남은 방법은? "아니야, 이 토론은 사실 꽤 흥미로웠고, 참여자들도 괜찮았어!"라고 그룹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104] 즉, 자신의 고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룹의 매력을 '뻥튀기'한 것이죠. [105]

반면, 가벼운 신고식 그룹은 어땠을까요? 그들이 겪은 약간의 불편함이나 당혹감은 '혹독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107] 따라서 "내가 고생했다"는 생각이 약했고, 설령 약간의 부조화가 생겼더라도 "에이, 그 정도 읽는 것쯤이야" 라며 신고식의 의미를 축소하는 편이 그룹에 대한 평가를 바꾸는 것보다 더 쉬웠을 겁니다. [108] 즉, 어설픈 고생은 인지 부조화를 유발하고 태도를 바꿀 만큼 강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10] 신고식은 그 자체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투자'라고 느껴질 만큼 충분히 혹독해야만 했던 거죠.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들이 토론 '참여자들'보다 토론 '내용' 자체에 대해 더 큰 호감도 차이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111] 연구자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a) 사람들이 다른 사람(참여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나쁘게 평가하는 것을 더 어려워했을 수 있습니다. [112, 113] (b) 혹은 인지 부조화가 '지루한 토론을 들었다'는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부조화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 바로 그 '토론 내용'에 대한 평가를 바꾸는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114-118]

결론 및 시사점: 고생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애런슨과 밀스의 이 고전적인 실험은 사람들이 어떤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혹독한 신고식(불쾌한 경험)을 겪을수록, 그 그룹을 더 매력적으로 평가하게 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119, 128]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자신의 노력과 고통을 정당화하려는 인지 부조화 해소 과정에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121]

이 '노력 정당화(Effort Justification)' 현상은 우리 삶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 대학 동아리나 군대의 혹독한 신고식: 힘든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소속감과 충성심이 강해지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 비싼 교육 과정이나 자격증: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만족감을 느끼려 할 수 있습니다.
  • 힘들게 얻은 연애나 결혼: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맺어진 관계일수록 더 소중하게 여기고 긍정적인 면을 보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관계가 유지되진 않겠지만요!)
  • 심지어는 쇼핑에서도: 어렵게 구하거나 비싸게 산 물건에 대해 더 큰 만족감을 느끼고 단점을 애써 외면하려는 심리도 이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연구가 '사람들을 힘들게 할수록 좋다'거나 '모든 고생은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우리 마음에 어떤 편향(bias)이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그룹이나 목표, 심지어 물건에 대해 느끼는 강한 애착이 정말 그것의 본질적인 가치 때문인지, 아니면 그것을 얻기까지 내가 쏟아부은 노력과 고통을 정당화하려는 내 마음의 작용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여러분이 속한 그룹, 여러분이 노력해서 얻은 성취들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혹시 애런슨과 밀스가 발견한 이 '혹독한 신고식 효과'가 여러분의 마음속 어딘가에서도 작용하고 있지는 않나요?

참고 문헌:

Aronson, E., & Mills, J. (1959). The effect of severity of initiation on liking for a group. Th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59(2), 177–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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